청주 가볼만한곳 정북동 토성
페이지 정보
작성자청주핫플레이스작성일 24-10-04 13:55조회 49댓글 0본문
청주 가볼만한곳 정북동 토성
주소 : 충북 청주시 청원구 정북동 353-2
1990년 12월 14일 충청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가, 1999년 10월 28일 사적으로 승격 지정되었다. 청주시에서 관리하고 있다.
청주시 북쪽 미호천(美湖川) 연안에 펼쳐진 평야의 중심에 위치한 평지 토성이다. 정확한 축조연대를 알 수 없으나, 다만 영조 20년(1744)에 상당산성의 승장(僧長)으로 있던 영휴(靈休)가 쓴 《상당산성고금사적기(上黨山城古今事蹟記)》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보인다.
"신라 말에 궁예(弓裔)가 양길(梁吉)의 부하로 있다가 군사를 나누어 동쪽을 공략할 때에 지금의 상당산성을 쌓고 근거지로 삼았다. 후에 후백제의 견훤이 상당산성을 빼앗고, 상당산성의 서문 바깥 까치내[鵲江]의 곁에 토성을 쌓고 창고를 지어 부세(賦稅)를 거두어 쌓아 두었다가 상당산성 안으로 운반해 들였다. 이러한 이유로 후세 사람들이 시로 읊기를 들판의 토성은 백제 때를 지나오고, 암자의 금부처는 삼한(三韓) 때를 거쳤다고 하였다."
이로써 정북동 토성이 후삼국의 쟁란기인 9세기 말에서 10세기 초에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하게 하였으나, 성내 민가 신축시에 돌화살촉과 돌창, 돌칼 등의 유물이 출토된 바 있고, 성의 위치와 주변 여건이 비교적 성곽으로서의 초기적 양상을 보여주고 있어, 삼국시대의 전·중기에 축성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토성은 남북이 약간 긴 사각형이며 성안의 중심부에는 동서로 가로 질러 농로가 있다. 이 농로의 북쪽은 20여 호의 민가가 있고, 남쪽은 경작지로 되어 있다. 성벽은 단면이 사다리꼴로 동서남북을 가리키고 있으며, 4곳 모서리 부분은 약간 높고 바깥으로 돌출되어 치성 또는 각루의 시설이 있던 듯하다. 4면 성벽의 중간쯤에는 문터로 보이는 절단부가 있으며, 문지와 모서리 사이에도 곡성(曲城)의 흔적이 있어 치성의 흔적은 12개소이다.
문터 가운데 동·서·북의 것은 지금도 통로로 사용되고 있다. 특히 남문터와 북문터는 좌우의 성벽이 엇갈리게 축조된 독특한 형태로서 옹성(甕城)의 초기형식으로 주목된다. 배수문제는 서쪽이 약간 높은 지세에 따라 서문으로 물의 유입을 막고, 성안의 물을 동쪽으로 흘려 동문으로 배수시켰다. 성안에서 빠져나간 물은 성밖을 둘러싼 해자(垓字)로 유입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96~1997년 서쪽 성벽 일부와 서문터에 대한 발굴조사가 실시되고, 1999년에는 성내 동반부와 남반부에 대한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성벽의 벽체부분은 안팎으로 나무기둥을 세워서 내부를 다지는 공법이 채택되고, 기단을 별도로 마련하지 않고 벽체의 안팎에 다시 기둥을 세워 축조한 방식을 취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서문터는 굴립주에 의한 문이 있었다가 후대에 냇돌적심을 이용한 초석 기둥으로 대체되었다. 그 외에도 성안에서 주거유구, 기둥구덩유구, 길 유구, 냇돌무더기 유구 등이 확인되고, 성외 동남부 및 남문 바깥에서 해자가 확인되었다.
성벽의 높이는 2.7m~4.5m, 성벽의 윗부분폭은 2m, 성벽의 밑부분은 12.5m~17.5m이다. 성벽의 길이는 동벽 185.5m, 서벽 165m, 남벽 155m, 북벽 170m으로 전체 675.5m이다. 이곳은 현존 유구의 상태가 가장 완전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토성의 구조나 출토 유물 등으로 미루어 한국 초기의 토성 연구에 있어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